
[이투뉴스] “아무래도 빛을 적게 받다 보니 처음에는 느리게 자라고 열매 크기도 작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면 비슷하게 자라고 수확만 늦어집니다. 봄철 서리피해라든지, 태풍에 의한 낙과피해는 오히려 적습니다. 태풍이 왔을 때 낙과율은 40%가량 줄었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나주시 금천면 석전리 ○○나주배농장. 2차선 도로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난 외길로 200m 가량 걸어들어가자 녹색에너지연구원이 농민 배밭에 실증용으로 구축한 영농형 태양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 수확은 진즉 끝났지만, 배나무 위 태양광 모듈은 사철 내내 수확기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배 항온저장고에서 쓰고 있다.
김근호 녹색에너지연구원 태양에너지연구실 팀장은 “영농형 구조물 설치 시 논은 습지라 부분 침하가 생기기 쉽고, 오래된 과수원은 뿌리가 많이 걸리지만 그래도 과수가 더 나은 편”이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오히려 적당한 그늘을 만들기 위해 포도나 밀농장에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해 실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 수확 끝난 곳서 사철 태양광 수확 창고용으로 사용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어디서든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이 유독 한국에선 기피시설 취급을 받고 있다. 지자체들도 이격거리 규제를 만들어 도로나 민가에서 최소 수백m 거리를 두도록 하고 있다. 조건에 맞는 부지를 찾기도 어렵지만, 전력망이 부족하면 그조차 허사다. 한 해 4GW 넘게 보급되던 태양광이 작년에 절반 수준으로 준 이유다.
광주기후에너지진흥원 정책협력위원들과 이날 방문한 현장은 배밭에 조성한 20kW규모 영농형 태양광이다. 작물이나 과수(果樹) 사이에 구조물 기둥을 박은 뒤 줄기나 잎이 닿지 않을 정도 높이에 180W급 소형 전지판을 일정간격으로 배열한 루프탑형이다. 10kW는 모듈각도까지 조절 가능한 각관형 접이식이고, 나머지 10kW는 경량철재를 활용한 고정형 Y구조다. 실용성이나 비용면에서 농민이 제안한 Y구조가 더 낫다고 한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해 작물과 전력을 동시에 생산한다. 농가소득을 늘리면서 농지잠식에 따른 식량안보 우려도 해소할 수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나주를 비롯해 오창, 보성, 함양, 가평, 순천, 전주 등 전국 63곳에 누적 4MW를 설치했다. 벼농사 겸업이 가장 많고, 포도나 블루베리, 무화과, 녹차, 양파, 배추, 감자 등도 재배한다.
녹색에너지연구원은 이 가운데 배밭 등 13곳 160kW를 운영하면서 시스템 개발과 표준 재배기술 등을 검증하고 있다. 차광률 30% 이내, 감수율 20% 이내 재배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산업통상자원부와는 100kW급 영농형 태양광 표준화 작업, 농림축산식품부와는 재배기법 개발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배농사 병행은 나주가 유일하다.
작물도 수확하고 매전(賣電)까지하면 이론상 ‘일거양득’이 맞다. 하지만 햇빛을 가리는 모듈이 농작물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수년간 지켜본 뒤 농업과 전력생산의 최적점을 찾는 단계여서 아직 경제성이나 상업성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농림부 연구사업으로 2018년 준공한 10kW급 접이식은 스마트팜 정보통신(ICT) 설비까지 포함해 약 10억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소출 측면에서 전기농사 겸업은 일단 합격점이다. 2019년 작황을 보면, 영농형 태양광 아래서 수확한 신고배는 다른 노지재배 배 대비 당도는 0.4Bx(브릭스=과일 100g 내 당분 1g) 낮았으나 무게는 8.5% 더 나갔고 낙과율도 38.4% 감소했다. 태풍이 잦았던 해라 태양광 구조물이 바람막이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는 영농형이 냉해피해가 36% 적었다. 3년 평균값은 각각 당도는 0.7Bx, 무게와 크기는 4%씩 낮거나 작았다.
김근호 팀장은 “실증연구단지라 전기를 판매하지는 못하지만, 농가 전기료 절감액도 적지 않다”면서 “요즘은 워낙 고출력 모듈이 잘 나와 경제성이 좋아졌다. 한 해 논농사로 매출 1000만원을 올리는 농민이라면 영농형 100kW로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처음 영농형 태양광 연구를 시작할 때는 가뜩이나 농촌 난개발 태양광으로 말이 많을 때라 농림부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는데, 이제는 산업부가 보급지침을 만들고 있고 2026년까지 한국형 표준모델도 정립할 예정”이라며 “머잖아 표준화가 완료돼 보급여건과 경제성이 한층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냉해·낙과피해 더 적고 품질은 유사…한국형 표준모델 정립
농가 소득증대와 농지활용이란 장점과 잠재력은 있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일본의 경우 2013년 첫 영농형 태양광 농지에 허가를 내준 이래 2018년 약 1300개소, 이듬해 약 2000개소에 영농형 시설이 설치됐다. 대부분 논·밭 작물이며 50~200kW 사이 소규모다. 치바현과 군마현에서는 MW급 단지도 운영을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절대농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최대 8년까지만 농지전용을 허용하다보니 수지타산을 생각하면 선뜻 시작하기 어렵다. 정부는 농업진흥지역 외 농지에 한해 전용기간을 기존 8년에서 23년으로 연장하는 농지법 개정이나 영농형태양광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직접 농지를 소유하고 경작하는 자경농(自耕農)은 적고 임차농(임대농)이 대부분인 농촌현실도 걸림돌이다. 수익분배와 보상 문제, 직불금 중단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여기에 농지잠식에 대한 원주민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국내 태양광 보급량의 약 60%가 농촌에 설치됐는데, 수익은 외지인이 모두 가져간다는 인식을 퍼져있다.
호남지역 한 발전사업자는 “태양광 최적지를 매물로 내놓은 어르신을 만났더니, 태양광용으로는 절대 팔지 않겠다고 해 포기한 적이 있다”면서 “농지전용 문제 외에도 전자파 발생 등의 거짓 정보가 아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근호 팀장은 “고령의 농장주를 빼면 외국인이 전부일 정도로 영농여건이 열악하다”면서 “영농형 집적화단지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영광에 3MW규모로 착공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세농민에게만 엄격한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에너지기업 CEO는 “수백만평 규모 농업진흥구역과 온갖 재배사는 마구 풀어주더니, 많아야 몇 백평을 쓰겠다는 농민은 규제한 게 전 정부였다”면서 “영농형 태양광을 왜 해야 하는지,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진정 농민을 위한 제도인지 등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주=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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